2004년 개봉한 영화 *트로이(Troy)*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트로이 전쟁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화려한 액션과 웅장한 스케일로 담아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캐릭터는 바로 그리스의 전설적인 전사 아킬레우스입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뛰어난 무술 실력과 불사의 몸을 지닌 존재로 그려지지만, 영화와 신화 속 그의 이야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고 관객들의 평가는 높은 편이랍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이기 때문이겠죠. (개인적으로 오락영화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속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그의 신화적 배경과 트로이 전쟁에서의 활약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영화 속 아킬레우스 –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우스(브래드 피트 분)는 최고의 전사이지만, 전쟁과 권력에 회의를 느끼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왕들에게 충성하기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자유를 중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아가멤논 왕과의 갈등이 영화 내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영화 속 아킬레우스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보이아 왕과의 일대일 결투입니다. 그는 빠르고 정확한 검술로 상대를 단숨에 쓰러뜨리며, 전쟁터에서 단 한 명만으로도 전세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전사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전쟁 기계가 아니라,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감정을 폭발시키고, 헥토르에게 복수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냅니다. 영화에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투신이 영화 사상 최고의 결투신 중 하나로 뽑힐 정도로 훌륭하게 연출되었는데요, 대역없이 배우들이 모두 직접 연기했다고해요.
특히 영화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신화적인 운명보다는 개인적인 결단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그는 불사의 존재로 그려지기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인간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며, 트로이에서 브리세이스와의 관계를 통해 감정을 가진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신화 속 아킬레우스와는 차이가 있는 부분입니다. 잠시 다른이야기를 하자면, 브리세이스가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불화의 계기였던 것은 원전과 같지만, 트로이의 공주, 아킬레우스가 사랑에 빠지는 여자,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죽음에 결정적인 존재는 브리세이스가 아니라 헥토르의 여동생인 폴릭세네였어요. 원전에서 브리세이스는 헥토르의 사촌 여동생이 아니랍니다. 영화에서의 브리세이스는 브리세이스와 폴릭세네를 합친 인물이라고 해요.
2. 신화 속 아킬레우스 – 불사의 전사, 그리고 운명의 비극
그리스 신화에서 아킬레우스는 테티스 여신과 필라쿠스 왕 페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半神) 영웅입니다. 그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킬레우스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에 그를 담가 불사의 몸을 만들었지만,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는 물에 닿지 않아 유일한 약점으로 남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아킬레스건'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죠.
신화 속 아킬레우스는 운명에 의해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할 것이 정해진 영웅입니다. 하지만 그는 처음에는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여장을 한 채 스키로스 섬에서 숨어 지냈어요.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계략으로 결국 정체가 발각되어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는 장면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신화에서는 그의 행동이 더욱 잔혹하게 묘사됩니다.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묶고 트로이 성벽 주변을 끌고 다니며 모욕을 가합니다. 신화 속 아킬레우스는 감정적이고 분노에 휩싸인 인물로 묘사되며, 그의 행동은 결국 신들의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그런데 원전에서 헥토르와 아킬리우스의 싸움은 제우스와 아테나의 개입으로 아킬레우스가 이길 수밖에 없는 불공평한 전개로 진행됐기 때문에 이 영화의 결투신을 보고 원전을 읽은 독자들이 비교적 싱거운 결말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을것 같습니다.
그의 죽음 역시 영화와 차이가 있습니다. 신화에서 그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쏜 화살을 맞고 죽는데, 이는 아폴론 신이 개입해 그의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를 명중시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초자연적인 요소는 빼고, 트로이 군이 아킬레우스를 화살로 공격해 쓰러뜨리는 방식으로 현실적인 연출을 선택했습니다.
3. 트로이 전쟁과 아킬레우스 – 영화와 신화의 차이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 중 하나이며,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등의 서사시에서 자세히 다루어집니다. 하지만 영화 트로이는 신화적인 요소를 줄이고 현실적인 역사 드라마에 가깝게 각색되었습니다. (대체로 평론가들이 지적하는 점도 영화가 너무 상업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과 원작 《일리아스》와 비교하여 서사에 깊이가 없고 차이점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어요.)
① 신들의 개입이 없는 영화
신화에서는 올림포스 신들이 트로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아테나, 헤라, 포세이돈은 그리스 편을, 아폴론과 아프로디테는 트로이 편을 들며 전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신들의 존재가 완전히 배제되고, 모든 사건이 인간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② 트로이 전쟁의 시간 축소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은 10년에 걸쳐 진행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불과 몇 주 안에 모든 사건이 빠르게 전개됩니다. 이는 영화적 연출을 위해 각색된 부분이며, 보다 긴장감 있는 전개를 위해 이야기의 흐름이 압축되었습니다. 워낙에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서사시라서 디테일하게 서사했다가는 영화를 하루종일 봐도 다 못 볼 것이라는 것은 감안해야 하겠죠. 그렇게 많이 생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은 감독판 기준으로 3시간이 넘는답니다.
③ 파리스와 헬레네의 결말
신화에서는 트로이가 함락된 후 파리스가 죽고, 헬레네는 다시 스파르타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도망치는 장면이 나오며, 보다 낭만적인 결말을 보여줍니다. 아, 독일 출신의 여배우 다이앤 크루거가 맡은 헬레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라는 설정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답게 나오지 못해서 당시에는 반발이 꽤 심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누더기 옷을 입고, 상처투성이에 여러모로 구질구질하게 나온 브리세이스 역의 로즈 번이 헬레네 역의 크루거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저도 헬레나보다 브리세이스가 더 예쁘잖아. 하고 생각했어요.)
영화 트로이는 그리스 신화의 핵심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전쟁 서사극으로 각색된 작품입니다. 특히 아킬레우스의 캐릭터는 신화 속 반신(半神)적인 존재에서 더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전사로 변화했으며, 전쟁을 통한 명예와 자유를 추구하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신화 속 아킬레우스는 운명에 의해 움직이는 영웅이지만, 영화 속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선택과 신념을 따라가는 인간적인 캐릭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트로이가 단순한 신화 영화가 아닌, 보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드라마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사용된 트로이 목마 세트는 촬영 직후 트로이가 있는 튀르키예에 기증되어 지금도 튀르키예의 차나칼레에 전시되어 있다고 해요. 이전까지 매체에 자주 나온 매끈한 목마 상과 달리 진짜 군함을 부숴서 나온 목재로 만든 듯한 거친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581회(2018년 12월 8일 방송) 터키(튀르키예)편에서 소개되었습니다. 트로이 전쟁과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력적인 서사로 남아 있습니다. 신화속 아킬레우스를 만나고 싶다면 영화 트로이에서 만나보세요. (에릭바나와 브래드피트, 올랜도 블룸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