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Kill Bill) 시리즈는 강렬한 여성 캐릭터와 독창적인 스타일로 전설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내용부터 요약하자면, 암살자 조직의 No.1이자 보스의 애인이었던 블랙 맘바가 자신을 살해하려고 한 보스와 그 일당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 '더 브라이드(The Bride)'의 복수극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결합하여 독보적인 매력을 선보입니다. 특히 여성 캐릭터의 강렬한 액션과 서사는 기존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 차별화되며, 저는 지금까지도 여성 중심 액션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킬빌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이번 글에서는 킬 빌의 매력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볼게요.
1. 더 브라이드 – 강렬한 여성 캐릭터의 탄생
킬 빌의 주인공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 분)는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강렬한 여성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과거 킬러 조직 '데드리 바이퍼 어쌔시네이션 스쿼드(Deadly Viper Assassination Squad)'의 일원이었지만, 결혼식을 앞두고 동료들에게 배신당해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4년 후 깨어난 그녀는 자신을 배신한 자들에게 하나씩 복수를 시작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더 브라이드는 단순한 복수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뛰어난 무술 실력과 냉철한 판단력, 강한 정신력을 지닌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맨손 격투, 일본도(카타나)를 이용한 검술,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능력을 보여주며, 전투 기술 하나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하지만 그녀가 단순히 강한 전사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 브라이드는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동시에, 딸을 향한 모성애와 인간적인 감정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모욕과 상처들은 상당 부분 여자가 살아가는 데 겪는 어려움들이 많다는 은유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결국 킬 빌은 주인공이 이러한 어려움들을 넘어 결말에 이르러 사랑하지만 함께할 수 없는 남편과 작별하고 아이와 독립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면모 덕분에 그녀는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마 서먼은 이 역할을 위해 수개월간 무술과 검술을 훈련받았으며, 영화 속 화려한 액션 장면들을 대부분 직접 소화했습니다. 특히 일본도와 싸우는 장면들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평가받으며, 킬 빌을 단순한 액션 영화를 넘어선 전설적인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주인공인 베아트릭스의 캐릭터를 잡는 데에는 우마 서먼의 입김도 많이 들어간 편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피투성이로 누워있던 충격적인 도입부는 우마 서먼의 아이디어. 1부 마지막에는 스태프롤에 주인공 'The Bride'가 Q와 U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Q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U는 우마 서먼이겠지요?
2. 독창적인 스타일 –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출
킬 빌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장르적 스타일이 녹아 있는 영화입니다.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동양 무협 영화, 사무라이 영화, 서부극,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 등의 요소가 결합된 독창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1편에서는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영화의 주요 전투 장면들은 일본 검술 액션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오렌 이시이'(루시 리우 분)와의 대결은 일본 무협 영화와 애니메이션 스타일이 결합된 독특한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영화 중간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장면은 일본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과 같은 작품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 또한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실험적인 연출 방식입니다. 여담으로 영화 속에서 묘사된 일본은 현실 일본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외국인이 상상하는 ‘와패니즈풍 일본’ 그 자체인데, 워낙 잘 만든 영화다 보니 일본 영화팬들도 가짜 일본이라고 좋아하며 거부감 없이 즐기고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고 해요.
또한, 킬 빌은 타란티노 감독답게 비선형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을 사용합니다. 더 브라이드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전개되면서, 관객들은 점차 그녀의 사연과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는 특정 캐릭터의 이야기를 플래시백을 통해 보여주며, 각각의 전투 장면을 독립적인 에피소드처럼 구성하여 마치 여러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1부는 대사가 상당히 적은 편인데, 액션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2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1부의 미스터리를 몽땅 까발려집니다. 2부가 시작되자마자 과거 회상 파트에서 빌의 정체가 드러나고 중반부에 엘 드라이버와 빌의 통화 내용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매우 노골적'으로 밝혀지지요.
영화의 촬영 기법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킬 빌은 과장된 색감, 극적인 조명, 슬로우모션, 흑백 화면 전환 등 다양한 연출 기법을 활용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사실 굉장히 잔인한 장면들도 많이 나오는데 그런 부분들이 다 흑백으로 처리되어 저같이 잔인한 장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무난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기존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과는 차별화되는 요소로, 킬 빌을 하나의 '스타일리시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게 했습니다.
3. 여성 액션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다
킬 빌 이전에도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는 많았지만, 대부분 남성 캐릭터들의 보조적인 역할이거나 성적인 요소가 강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킬 빌은 여성 캐릭터들이 중심이 되어 서사를 이끌어나가며, 전형적인 '남성 액션 히어로'의 공식을 깨뜨렸습니다.
영화 속에는 더 브라이드를 비롯해 강렬한 여성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 오렌 이시이(루시 리우) – 일본 야쿠자의 여성 보스
- 엘 드라이버(다릴 한나) – 냉혈한 여성 킬러
- 버니타 그린(비비카 A. 폭스) – 조직을 떠나 가정을 꾸린 전직 킬러
이들은 각각 개성 강한 스타일과 전투 기술을 지니고 있으며, 단순한 조연이 아닌 영화의 핵심 캐릭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오렌 이시이의 과거 편은 Production I.G를 통해 아예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점입니다. 엘드라이버의 첫 등장이 매우 인상적인데, 경쾌하게 휘파람을 불며 등장해요.(무섭습니다.) 아무튼 더 브라이드와 오렌 이시이의 대결 장면은 여성 캐릭터 간의 전투를 이렇게 강렬하고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집니다.
킬 빌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여성 중심 액션 영화들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의 퓨리오사, 원더 우먼(2017), 블랙 위도우(2021) 등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제작되며, 점점 더 많은 여성 배우들이 주연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킬 빌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활약하는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강한 여성 히어로가 남성 캐릭터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강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후의 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킬 빌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자 여성 액션 영화의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B급 액션물의 업그레이드 액션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망설임 없이 킬빌을 추천합니다.